성범죄 증인신문|왜 형사재판에서 증인신문이 승패를 가르는가

형사재판은 사실인정의 싸움이다

법률가들 중 일부는 형사재판을 법률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틀리지 않습니다. 형법의 구성요건, 위법성, 책임, 증거법, 전문법칙,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등은 형사재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 재판을 수행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형사재판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법률 그 자체보다 사실인정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사실을 인정한 후 그 사실에 법률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정교한 법률논리를 준비하더라도 전제가 되는 사실인정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법률논리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사실인정 단계에서 이미 재판부의 인식이 형성되었다면 상대적으로 단순한 법률논리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제추행 사건에서 핵심 쟁점이 되는 것은 결국 피고인이 추행행위를 하였는지 여부입니다. 사기죄 사건에서는 실제로 기망행위가 존재하였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스토킹 사건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접근이었는지 여부가 문제됩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해당 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와 그 행위가 학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법률 이전에 사실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형사판결문을 읽어보면 재판부는 법률조문을 적용하기 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사실인정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바로 “진술의 신빙성”입니다. 고소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참고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피고인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사실인정의 중심이 됩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 스토킹 사건, 아동학대 사건, 가정폭력 사건과 같이 진술증거의 비중이 높은 사건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물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사건에서는 결국 누군가의 진술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형성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절차가 바로 증인신문입니다.

따라서 형사재판에서 증인신문은 단순한 절차적 과정이 아닙니다. 증인신문은 사실인정 자체를 움직이는 도구이며, 재판부의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이고, 결국 판결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인신문은 질문의 기술이 아니라 설득의 기술이다

많은 변호사들이 증인신문을 처음 접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실제로 증인신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질문지를 작성하고 예상답변을 정리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증인신문을 오랫동안 수행한 변호사일수록 점점 질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설득입니다.

증인신문은 질문을 많이 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또한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기술도 아닙니다. 더욱이 증인을 굴복시키거나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은 아닙니다. 증인신문의 본질은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있습니다.

실무상 많은 초보 변호사들은 증인을 상대방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증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답변을 하면 이를 반박하려 하고, 증인의 진술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면 논쟁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증인신문의 본질을 오해한 것입니다.

법정에서 실제로 설득되어야 하는 사람은 증인이 아닙니다. 증인은 이미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법정에 출석합니다. 고소인은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기 위해 출석하고, 참고인은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을 진술하기 위해 출석하며, 수사관은 자신의 수사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출석합니다. 이들을 법정에서 설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면 판사는 다릅니다.

판사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오직 증거와 진술을 통하여 사건을 이해합니다. 따라서 변호인이 진정으로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증인이 아니라 판사입니다.

영미법계의 유명한 재판기술 교재들은 반대신문의 상대방은 증인이 아니라 재판부라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실제로 훌륭한 반대신문을 관찰해 보면 변호인은 증인과 논쟁하지 않습니다. 대신 재판부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재판부가 “왜 진술이 달라졌을까?”, “정말 그 상황이 가능했을까?”, “이 부분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이미 증인신문은 성공한 것입니다.

따라서 증인신문의 실력은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을 했는가로 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판부의 사고를 설계하였는가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결국 증인신문은 질문의 기술이 아니라 설득의 기술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증인신문은 증인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판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죄는 증인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만드는 것이다

형사변호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의 변호사들은 종종 증인을 무너뜨리는 것을 증인신문의 목표로 생각합니다. 특히 고소인을 상대로 한 반대신문에서는 상대방의 진술을 붕괴시키거나 스스로 모순된 답변을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재판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이나 스토킹 사건과 같이 진술증거가 핵심이 되는 사건에서 고소인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여러 차례 동일한 진술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법정에서도 비교적 일관된 진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장시간의 반대신문을 진행하더라도 고소인이 기존 진술을 반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긴 반대신문은 고소인의 일관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미법계가 강조하는 반대신문의 목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반대신문의 목적은 증인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신문의 목적은 진술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것입니다.

증인이 끝까지 자신의 진술을 유지하더라도 재판부가 그 진술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반대신문은 성공한 것입니다. 반대로 증인이 다소 당황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였더라도 재판부가 여전히 진술을 믿는다면 그 반대신문은 실패한 것입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는 반드시 피고인의 무고함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만 얻어지는 결과가 아닙니다. 형사재판의 원칙은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변호인이 해야 할 일은 사건의 모든 진실을 완벽하게 밝혀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검사가 제시한 사실인정 과정에 합리적 의심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증인신문의 목적은 더욱 명확해집니다. 증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만드는 것입니다. 증인을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증인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죄판단의 확신을 흔드는 것입니다.

결국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은 증인을 향한 기술이 아니라 재판부를 향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 체크리스트

☑ 형사재판의 핵심은 법률보다 사실인정이다.

☑ 사실인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술의 신빙성이다.

☑ 진술의 신빙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절차가 증인신문이다.

☑ 증인신문의 상대방은 증인이 아니라 재판부이다.

☑ 질문의 목적은 답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이다.

☑ 훌륭한 반대신문은 증인을 공격하지 않고 재판부가 스스로 의문을 갖게 만든다.

☑ 무죄는 증인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 본 글은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의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홈페이지 독자를 위해 소개한 것입니다.

※ 실제 출판되는 교재의 내용과는 일부 구성 및 설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은 실제 재판 경험을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서적입니다.

© 김현태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변호사
부산성범죄변호사
법률사무소 나인(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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