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 : 일반이론편』 연재 시리즈 3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차이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독일, 프랑스 등의 영향을 받은 대륙법계(Civil Law)에 속합니다. 반면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영미법계(Common Law)에 속합니다. 법률가라면 대륙법계와 영미법계가 서로 다른 법체계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양자는 법원의 운영방식, 증거법, 전문법칙, 배심재판의 활용 여부, 판사와 변호사의 역할 등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대륙법계는 성문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법관이 재판의 진행을 주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 영미법계는 판례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당사자주의와 구두주의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는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활동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증인신문 역시 재판의 핵심 절차로 취급됩니다.
증인신문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도 차이가 존재합니다.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증인신문을 사실확인의 절차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법학교육이나 실무교육에서도 증인신문의 순서, 절차, 이의신청 방법, 신문 방식과 같은 제도적 내용에 대한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증인을 상대로 어떠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질문을 배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증인의 신빙성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지와 같은 ‘기술’의 영역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영미법계에서는 증인신문을 재판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취급합니다. 미국과 영국의 로스쿨에서는 Trial Advocacy(재판변론기술), Evidence(증거법), Cross Examination(반대신문) 등의 과목을 통해 증인신문을 체계적으로 교육합니다. 현직 판사, 검사, 변호사들 역시 유명 재판 사례를 분석하고 모의재판을 통해 증인신문 기술을 반복적으로 훈련합니다. 영미법계에서는 뛰어난 증인신문 능력 자체가 우수한 변호사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형사재판의 본질적 공통점
그러나 형사재판을 실제로 수행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양 법체계의 차이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두 제도 모두 재판부를 설득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법체계가 다르더라도 형사재판의 본질은 사실인정과 설득에 있습니다. 변호사는 법관 또는 배심원에게 자신이 주장하는 사실을 믿게 만들어야 하며, 검사는 자신의 공소사실이 진실임을 확신시키려 노력합니다. 결국 형사재판은 법률조문만으로 결론이 결정되는 과정이 아니라, 증거와 진술을 통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증인신문 분야에서는 이러한 공통점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미국의 배심원도 결국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판사 역시 사람입니다. 증인의 기억이 흔들리고, 진술이 변화하며, 모순이 드러나는 과정은 어느 나라의 법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빙성이 높은 진술은 설득력을 얻고, 신빙성이 낮은 진술은 의심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의 형사재판 관련 교재들을 살펴보면 증인신문은 단순히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과정이 아닙니다. 상대방 증인의 신빙성을 공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재판부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최종 변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전략적 설득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본질은 한국 형사재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영미법의 증인신문을 연구해야 하는가
물론 우리나라 형사재판이 미국식 배심재판과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반대신문 기법을 그대로 한국 법정에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영미법계에서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증인신문 기술까지 외면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형사재판에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이라면 상당수의 경우 증인신문 절차가 필수적으로 진행됩니다. 결국 판사 역시 증인의 진술을 듣고 그 신빙성을 평가하여 사실인정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어떠한 방식으로 증인의 신빙성을 판단하는지, 어떠한 질문이 효과적으로 모순을 드러내는지, 어떠한 신문 방식이 증인의 해명을 차단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증인신문의 절차와 제도에 관한 설명은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실제 법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증인신문의 기술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다룬 자료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특히 무죄를 주장하는 형사사건에서는 법률지식 못지않게 증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신문하며, 어떻게 신빙성을 공격할 것인지가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필자는 실제 형사재판을 수행하면서, 특히 성범죄 사건, 스토킹 사건, 아동학대 사건 등과 같이 진술증거의 비중이 높은 사건들에서 증인신문의 중요성을 수없이 경험하였습니다. 많은 경우 증인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관된 태도로 자신의 진술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순서로 진술을 고정시키고, 다른 증거 또는 제3자의 진술과 비교하여 모순을 드러내는 경우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국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은 많은 질문을 하는 기술이 아니라, 필요한 질문만을 통해 신빙성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미법의 증인신문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형사재판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여러 원칙들은 미국이나 영국의 법정에서만 통용되는 기교가 아니라, 형사재판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보편적 원리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들은 한국 법정에서 무죄를 만들어내기 위한 증인신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미법에서 증인신문은 왜 중요한가
Trial Advocacy의 개념
우리나라 법학 교육에서는 주로 법률지식과 판례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법학교육에서는 법률지식뿐만 아니라 재판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 역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영미법계에서는 이를 흔히 ‘Trial Advocacy’라고 부릅니다. 직역하면 ‘재판 변론 기술’ 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만,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Trial Advocacy란
– 사건의 사실관계를 분석하는 능력
– 증거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능력
– 증인을 신문하는 능력
– 상대방 증인을 공격하는 능력
– 최종 변론을 통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능력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재판 수행 기술을 의미합니다. 영미권의 유명한 재판기술 교재들을 보면 증인신문은 Trial Advocacy의 핵심 요소로 평가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판에서 가장 강력한 증거는 결국 ‘사람의 입’이기 때문입니다. 서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CCTV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카카오톡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법정에서 직접 말을 합니다. 그리고 재판부는 그 말을 듣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판단합니다.
따라서 영미법계에서는 ‘증인을 통제하는 사람이 재판을 통제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증인신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국 변호사들이 증인신문을 배우는 방식
| ① 유도신문 연습② 예·아니오 질문 연습③ 진술 고정 연습④ 모순 제시 연습 |
우리나라에서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이후 대부분의 증인신문 기술을 실무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법학교육 단계부터 증인신문 훈련이 시작됩니다. 미국 로스쿨 학생들은 단순히 판례를 읽고 시험을 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 법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 주신문(Direct Examination)
– 반대신문(Cross Examination)
– 최종변론(Closing Argument)
등을 반복적으로 연습합니다. 특히 반대신문 교육에서는 다음과 같은 훈련이 이루어집니다.
① 유도신문 연습
| 예시 |
| ○ 나쁜 질문 ☞ “그날 술을 얼마나 마셨습니까?”○ 좋은 질문 ☞ “그날 소주 세 병을 마셨죠?” |
② 예·아니오 질문 연습
| 예시 |
| ○ 나쁜 질문☞ “당시 상황을 설명해보세요.”○ 좋은 질문☞ “당시 조명은 어두웠죠?” |
③ 진술 고정 연습
| 예시 |
| ☞ “경찰에서는 그렇게 진술하셨죠?”☞ “검찰에서도 그렇게 진술하셨죠?”☞ “오늘도 동일한 진술입니까?” |
④ 모순 제시 연습
| 예시 |
| ☞ “경찰 진술에서는 A라고 했습니다.”☞ “검찰 진술에서는 B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C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
위와 같은 ① 유도신문 연습, ② 예·아니오 질문 연습, ③ 진술 고정 연습, ④ 모순 제시 연습 등의 훈련을 수백 번 반복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Trial Advocacy 수업은 운동선수가 반복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증인신문이 재판 결과를 바꾸는 이유
영미법계에서 증인신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합니다. 실제로 재판 결과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많은 초보 변호사들은 법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법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사실인정이 잘못되면 아무리 훌륭한 법리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례 1 : 강제추행 사건
| ● 쟁점“고소인이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가” 고소인은 “분명히 싫다고 말했다.”고 진술합니다.그런데 증인신문 과정에서 “고소인이 웃고 있었다.”, “고소인이 먼저 술을 권했다.”, “고소인이 이후 함께 노래방에 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경우 재판부는 “고소인의 진술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
사례 3 : 스토킹 사건
| ● 쟁점“고소인의 의사에 반하여 접근했는가” 고소인 “연락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카카오톡 대화와 참고인 신문 결과 오히려 고소인이 먼저 연락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증인신문이 사건의 방향을 뒤집게 됩니다. |
사례 3 : 아동학대 사건
| ● 쟁점“아이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가” 아이 “아빠가 매일 때렸다.” 그러나 증인신문 결과 날짜가 계속 바뀜, 장소가 계속 바뀜, 목격자가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경우 증인신문 자체가 무죄 판결의 핵심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
필자의 경험
필자는 성범죄 사건을 수행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많은 변호사들은 고소인을 상대로 장시간 증인신문을 진행하면 진술의 허점을 발견하거나 스스로 모순된 답변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소인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동일한 진술을 반복적으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성범죄 사건에서 고소인을 장시간 신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모순이 발견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 진술의 일관성과 반복성만 강화되는 결과를 경험한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준강간 사건에서 고소인을 상대로 수십 개의 질문을 하더라도 고소인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당시 의식이 없었습니다.”라는 취지의 진술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고소인에 대한 직접 신문만으로는 재판부에게 ‘고소인의 진술이 일관된다’는 인상만 남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소인의 진술을 먼저 충분히 고정시킨 후 참고인, 공범자, 수사관 등 제3자 증인을 차례로 신문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고소인이 법정에서 한 진술과 참고인의 진술이 달라질 수도 있고, 수사과정에서의 진술과 법정진술 사이에 차이가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객관적 증거와 고소인의 진술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고소인 진술과 다른 증거들 사이에서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재판부는 그 순간부터 진술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증인을 법정에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부로 하여금 ‘과연 이 진술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은 증인을 몰아붙이는 기술이 아니라, 재판부가 스스로 합리적 의심을 갖도록 만드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영미법계가 증인신문을 재판의 핵심 기술로 평가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영미법의 증인신문 기법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핵심 체크리스트
- 증인신문을 통하여 확보하려는 사실을 미리 정하였는가?
- 모든 질문이 사건의 핵심 쟁점과 연결되어 있는가?
- 한 질문에 하나의 사실만 포함되어 있는가?
- 증인이 할 답변을 기록과 증거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가?
- 진술의 모순을 제시하기 전에 현재 진술을 충분히 고정하였는가?
- 증인에게 사건 전체를 다시 설명할 기회를 주는 질문은 없는가?
- 증인에게 법적 결론이나 진술의 신빙성 평가를 직접 묻고 있지는 않은가?
- 증인과 논쟁하거나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질문은 없는가?
- 유리한 답변을 얻은 뒤 불필요한 추가 질문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 각 답변을 최종변론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준비하였는가?
- 고소인의 진술뿐 아니라 참고인, 수사관, 객관증거와의 비교 계획이 있는가?
- 질문의 양이 아니라 재판부에게 남길 의문을 중심으로 신문을 설계하였는가?
※ 본 글은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의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홈페이지 독자를 위해 소개한 것입니다.
※ 실제 출판되는 교재의 내용과는 일부 구성 및 설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은 실제 재판 경험을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서적입니다.
© 김현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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