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증인신문|증인과 싸우지 마라, 영미법식 반대신문의 4가지 기본 철학

성범죄 증인신문에서 반대신문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질문을 얼마나 공격적으로 하느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증인과 논쟁하지 않고, 증인에게 불필요한 설명의 기회를 주지 않으며, 이미 기록을 통하여 확인된 사실만 짧고 정확하게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은 피해 진술의 신빙성이 재판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증인의 진술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거짓말 아닙니까?”라고 몰아붙인다면 증인에게 기존 진술을 반복하고 보완할 기회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영미법식 반대신문은 증인을 말로 이기는 기술이 아닙니다. 필요한 사실을 재판부 앞에 순서대로 제시하여, 재판부가 스스로 합리적인 의문을 갖도록 만드는 설득의 기술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기본 철학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영미법식 증인신문의 4가지 기본 철학

① 증인과 싸우지 말 것② 설명할 기회를 주지 말 것③ 모르는 답을 묻지 말 것④ 필요한 질문만 할 것

증인과 싸우지 말 것

증인과 싸우지 마라.

영미법계의 재판기술 교재를 읽어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증인과 싸우지 마라.” 초보 변호사들은 종종 반대신문을 일종의 논쟁이나 말싸움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증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답변을 하면 이를 즉시 반박하려 하고, 증인이 납득하지 못하는 답변을 하면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신문의 목적은 증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신문의 목적은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증인과 변호사가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어떠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변호사가 증인을 공격하는 모습만 남게 됩니다.

반대로 차분하게 사실만 확인하는 변호사는 재판부에게 훨씬 신뢰감 있는 인상을 줍니다.

  • 나쁜 예
● 변호사 : “그 말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 증인 : “아닙니다.”   ● 변호사 :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 증인 :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 변호사 : “거짓말 아닙니까?”   ○ 증인 : “아닙니다.”   이 장면에서 얻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증인에게 자신의 진술을 반복할 기회만 제공한 결과가 됩니다.
  • 좋은 예
● 변호사 : “경찰에서는 사건 발생 시각을 밤 10시라고 진술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검찰에서는 밤 11시라고 진술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오늘은 자정 무렵이라고 말씀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이상입니다.”   변호사는 단 한 번도 증인과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스스로 진술의 신빙성을 검토하게 됩니다. 영미법계에서는 이를 “증인과 싸우지 않고 재판부를 설득하는 신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설명할 기회를 주지 말 것

설명할 기회를 주지 마라.

영미법 반대신문의 가장 유명한 원칙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증인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지 마라.” 많은 변호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증인에게 해명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 나쁜 예
● 변호사 : “왜 경찰에서 그렇게 진술했습니까?”   ○ 증인 : “당시 너무 긴장해서 그랬습니다.”   ● 변호사 : “왜 오늘은 다르게 말합니까?”   ○ 증인 : “경찰에서 잘못 말했습니다.”   결국 변호인이 스스로 증인의 변명 기회를 만들어준 셈입니다.
  • 좋은 예
● 변호사 : “경찰에서는 A라고 진술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오늘은 B라고 말씀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이상입니다.”   설명은 최후변론이나 의견서(변론요지서)로 변호사가 하면 됩니다. 반대신문은 증인의 설명을 듣는 절차가 아닙니다. 반대신문은 증인의 진술을 고정시키고 검증하는 절차입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 원칙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소인에게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질문하면, 고소인은 오히려 신고를 늦게 한 이유를 길게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결국 변호인이 고소인의 신빙성을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르는 답을 묻지 말 것

모르는 답을 묻지 마라.

미국의 유명한 재판기술가 어빙 영거(Irving Younger, 1932~1988)는 반대신문의 원칙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답을 모르면 질문하지 마라.” 이 원칙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실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중요합니다.

  • 나쁜 예
● 변호사 : “당시 피고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변호사는 알 수 없습니다. 증인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상대방에게 유리한 답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좋은 예
● 변호사 : “당시 피고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죠?”   ○ 증인 : “예.”   ● 변호사 : “당시 현장에는 두 사람뿐이었죠?”   ○ 증인 : “예.”   ● 변호사 : “이상입니다.”

영미법계에서는 반대신문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질문과 예상 답변이 머릿속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형사사건에서는 수사기록, 진술조서, CCTV, 통화내역 등을 통하여 상당수 답변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대신문은 정보를 수집하는 절차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습니다.

필요한 질문만 할 것

필요한 질문만 하라.

초보 변호사들은 흔히 질문을 많이 해야 좋은 반대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미법계에서는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좋은 반대신문은 질문이 많은 신문이 아니라 불필요한 질문이 없는 신문입니다.실제로 숙련된 변호사들의 반대신문은 생각보다 매우 짧은 경우도 많습니다.

  • 사례 : 성범죄 사건
● 쟁점“고소인이 당시 의식이 있었는가”   ○ 초보 변호사- “정말 잠을 자고 있었습니까?”- “얼마나 취했습니까?”- “술을 얼마나 마셨습니까?”- “혹시 기억나는 것은 없습니까?”- “잠에서 깬 적은 없습니까?”- “정말 의식이 없었습니까?”30분 동안 질문을 남발.   ○ 고소인-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결국 같은 진술만 반복됩니다.   ● 숙련된 변호사- “당시 직접 휴대전화 잠금해제를 하셨죠?”- 고소인 : “예.”- “직접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셨죠?”- 고소인 : “예.”- “친구에게 ‘나 지금 여기야’라는 메시지를 보냈죠?”- 고소인 : “예.”- “직접 술을 추가 주문하셨죠?”- 고소인 : “예.”- “결제 비밀번호도 직접 입력하셨죠?”- 고소인 : “예.”- “이상입니다.”   재판부는 이미 필요한 사실을 모두 들었습니다. 휴대전화 잠금해제. 카카오톡 전송, 위치 전송, 술 추가 주문, 비밀번호 입력. 이 모든 행동을 한 사람이 과연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는지에 대하여 재판부는 스스로 의문을 갖게 됩니다.   변호인은 단 한 번도 “거짓말 아닙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의식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미 그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미법식 반대신문의 핵심입니다.결론은 변호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질문은 ① 새로운 해명 기회를 제공하고, ② 새로운 위험요소를 만들고, ③ 이미 얻은 성과를 스스로 훼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미법계에서는 “반대신문을 끝내야 할 순간을 아는 것 역시 기술이다.”라고 가르칩니다.

필자 역시 실제 성범죄 사건을 수행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반대신문은 가장 화려한 반대신문이 아니라 가장 절제된 반대신문이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을 몰아붙이는 변호사보다 필요한 사실만 확인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는 변호사가 오히려 더 큰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영미법식 증인신문의 기본 철학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증인과 싸우지 말 것. 둘째, 설명할 기회를 주지 말 것. 셋째, 모르는 답을 묻지 말 것. 넷째, 필요한 질문만 할 것.

그리고 이 네 가지 원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무죄를 만들어내기 위한 증인신문의 사고방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미법식 반대신문 핵심 체크리스트

□ 반대신문의 목적을 증인과의 논쟁이 아니라 재판부 설득으로 설정하였는가

□ 증인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즉시 반박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가

□ “왜 그랬습니까?”와 같이 증인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는 질문을 삭제하였는가

□ 증인의 기존 진술과 법정 진술의 차이를 사실 단위로 나누어 질문하였는가

□ 질문하기 전에 예상 답변과 그 답변의 근거가 기록에 존재하는지 확인하였는가

□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올 수 있는 개방형 질문을 피하였는가

□ 하나의 질문에는 하나의 사실만 포함하였는가

□ 증인의 평가나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인 행동과 상황을 질문하고 있는가

□ 이미 얻은 유리한 답변을 불필요한 추가 질문으로 훼손하고 있지 않은가

□ 재판부가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을 확보한 뒤 신문을 종료하였는가

□ 증인에게 “거짓말 아닙니까?”라고 직접 결론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 최종적인 평가와 논증은 반대신문이 아니라 변론요지서와 최후변론에서 제시하도록 구분하였는가


※ 본 글은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의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홈페이지 독자를 위해 소개한 것입니다.

※ 실제 출판되는 교재의 내용과는 일부 구성 및 설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은 실제 재판 경험을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서적입니다.

© 김현태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변호사
부산성범죄변호사
법률사무소 나인(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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