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범죄변호사의 『무죄를 만드는 증인신문 기술 : 일반이론편』 연재 시리즈 4
반대신문(Cross Examination)의 진정한 목적
| ① 진실을 발견하는 절차인가② 신빙성을 공격하는 절차인가③ 증인을 이기는 것이 목표인가④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이 목표인가 |
진실을 발견하는 절차인가
많은 사람들이 증인신문의 목적을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형사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호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반대신문(Cross Examination)의 목적을 단순히 진실발견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재판에서 변호인이 증인을 신문하는 이유는 경찰이나 검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변호인은 이미 사건기록을 검토하였고, 증인이 어떤 진술을 할 것인지도 상당 부분 예측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신문은 이미 존재하는 증거와 진술을 검증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특히 형사사건에서는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수사기록, 진술조서, 녹취록, CCTV, 통화내역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반대신문은 새로운 진실을 찾아가는 탐험이라기보다는 기존 진술이 과연 믿을 만한지 검증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실제로 영미법계의 유명한 재판기술 교재들은 반대신문의 목적을 “정보 수집”보다는 “정보 검증”에 더 가깝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대신문의 출발점은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니라 “이 증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신빙성을 공격하는 절차인가
| 신빙성을 공격하라. |
영미법계에서는 반대신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를 증인의 신빙성(Impeachment)을 공격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증인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증인의 진술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라는 의심을 재판부에게 심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신빙성을 공격하는 절차 사례 : 성범죄 사건
| ● 고소인 “피고인이 제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 초보 변호사“거짓말하는 것 아닙니까?”“고소하려고 꾸며낸 것 아닙니까?”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고소인에게 해명의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영미법식 접근은 다릅니다.“경찰에서는 22시라고 진술하셨죠?”“검찰에서는 23시라고 진술하셨죠?”“오늘은 24시라고 말씀하셨죠?”“맞습니까?” 이 경우 재판부는 자연스럽게 “시간에 관한 진술이 계속 달라지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증인이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재판부가 스스로 신빙성에 의문을 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
증인을 이기는 것이 목표인가
| 증인을 이기려 하지말라. |
많은 초보 변호사들이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반대신문을 일종의 말싸움이나 논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미법계에서는 “증인과 싸우는 순간 이미 반대신문은 실패하였다.”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법정에서 증인과 변호사가 싸우는 모습은 오히려 재판부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례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증인을 이기려고 한 잘못된 사례
| ● 변호사 : “그 말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 증인 : “아닙니다.” ● 변호사 : “아니, 말이 안 되잖아요.” ○ 증인 :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 변호사 : “그건 거짓말 아닙니까?” ○ 증인 : “아닙니다.” 이 장면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증인에게 자신의 입장을 반복할 기회만 제공하였을 뿐입니다. 반대신문의 목적은 증인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증인이 끝까지 자신의 진술을 유지하더라도 재판부가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반대신문은 성공한 것입니다. |
증인을 이기려고 하지 않은 올바른 사례
반면 영미법식 반대신문은 증인과 논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변호사는 증인을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고, 증인을 굴복시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재판부가 진술의 신빙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실만 차분히 확인합니다.
| ● 변호사 : “증인께서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발생 시각을 밤 10시경이라고 진술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검찰 조사에서는 밤 11시경이라고 진술하셨죠?” ○ 증인 : “그랬을 겁니다.” ● 변호사 : “오늘 법정에서는 자정 무렵이라고 말씀하셨죠?” ○ 증인 : “예.” ● 변호사 : “시간에 관한 진술이 세 차례 모두 다른 것은 맞습니까?” ○ 증인 : “예.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 변호사 : “이상입니다.” 이 경우 변호사는 단 한 번도 증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증인과 논쟁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재판의 양상은 다양하고 증인의 답변이 간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증인신문이 이루어지는 경우 재판부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사건 발생 시각에 관한 진술이 왜 계속 바뀌는 것일까?”“과연 증인의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증인의 진술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반대신문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재판부에게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영미법계의 유명한 재판기술 교재들은 반대신문의 성공 여부를 증인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판부가 얼마나 의심하게 되었는지로 평가합니다. 결국 훌륭한 반대신문은 증인을 무너뜨리는 신문이 아니라, 재판부의 머릿속에 합리적 의심을 심어주는 신문입니다. |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이 목표인가
| 재판부를 설득하라. |
영미법계에서 가장 강조하는 반대신문의 목적은 결국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증인이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판사가 무엇을 생각하는가입니다. 증인이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유지하더라도 판사가 그 진술을 믿지 않게 된다면 반대신문은 성공한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준강간 사건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고소인은 법정에서도 계속해서 “저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합니다. 그러나 참고인 신문 결과* 고소인 스스로 술을 주문하였다.* 고소인은 대화에 적극 참여하였다.* 고소인은 휴대전화를 직접 사용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고소인은 끝까지 기존 진술을 유지하더라도 재판부는 “정말 의식이 없는 상태였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변호인은 고소인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대신 재판부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
필자는 실제 성범죄 사건을 수행하면서 이 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고소인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진술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소인의 진술을 먼저 고정시킨 후 참고인 등을 차례로 신문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고소인 진술과 다른 증거 사이에서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재판부는 그 순간부터 진술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 무죄를 만드는 반대신문은 증인을 공격하는 기술이 아니라 재판부가 스스로 합리적 의심을 갖도록 만드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반대신문의 진정한 승리는 증인이 침묵하는 순간이 아니라, 재판부가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